휴먼라이브러리 죄인으로 살아가는 삶
페이지 정보
최고관리자2022-04-08
본문
<죄인으로 살아가는 삶>
나는 정신적 고생을 가진 분들과 함께하는 사회복지사다. 센터를 이용하는 회원들이 경험하는 정신적 고생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그들의 부모는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 정신 질환의 어려움을 가진 자녀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들은 언제나 죄인의 입장에 놓인다. 자녀와 동행해 어디를 갈 때도, 집안에서 다른 자녀들과의 대화에서도, 심지어 사회복지사 앞에서도 그들의 허리는 펴질 날이 없다.
오늘 한 회원의 어머니가 기관에 방문했다. 그는 최근에 센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와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마스크를 쓴 채로 인사를 드렸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센터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했다. 얼굴을 마주하진 못했지만 눈빛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불쑥 찾아온 자신이 직원에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워했다. 센터에서 생활하는 회원의 일상에 대해 어머니와 나눴다. 그녀는 아들이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했다.
회원은 지금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거주하며 독립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하면서 어머니와 상의 끝에 결정한 일이었다. 그녀의 안부를 묻는 나의 말에 팔순을 앞둔 노모는 건강하다고 했다. 자신이 죽으면 그 자식을 누가 감당하겠냐며 아들을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건강을 돌본다고 했다. 모든 회원의 부모에게서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처음 기관을 방문한 어머니에게 센터 안내를 했다. 그녀는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했기 때문에 큰소리로 설명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안내를 받는 중에도 만나는 모두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무개 엄마입니다.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립니다.’
정신 질환의 어려움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나는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순간 노모가 어떤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팔순의 노모가 자신의 아들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모든 이에게 허리를 굽히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센터를 모두 돌아본 후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인다며 고맙다고 했다. 돌아갈 때까지도 재차 아들을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밀려드는 안타까움에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회원들의 어머니와 만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미안합니다’이다. 나는 보수를 받으며 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매번 그분들로부터 미안하다는 말과 고마움의 인사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자녀를 대신해 사과와 감사를 반복해야 하는 그분들의 마음은 과연 괜찮은 걸까.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내가 가진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은 노동을 댓가로 재화를 얻는 직업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 내가 만나는 이들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이 나의 일이 아닐까.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지만 연신 허리를 굽혀가며 아들을 부탁했던 그녀의 간절한 눈빛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