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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라이브러리 딸기의 유혹 -김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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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리201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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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1학기 문학교실 수필부분 참여자의 최우수 작품입니다.


딸기의 유혹

                                                                                       김락우

  딸기야 너는 나를 부르지 마라. 계란을 닮은 넌 그녀의 얼굴. 발그레 고운 빛은 그녀의 수줍은 볼터치. 부드러운 과육으로 여린 마음 대신하고, 그녀처럼 너만의 향기를 가졌구나. 잘 익어 먹음직한 네가, 크고 굵은 네가 마음에 들었다. 너와 함께 오며 설레었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여러 가지 종류의 과일을 좋아하지만 특히 딸기를 좋아한다. 딸기를 좋아하는 것은 딸기에 대한 추억들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 여섯 살 때인 1970년쯤 집에는 부모님과 우리 4남매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요즘과 달리 계절별로 제철인 과일만이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생활에 여유가 있지 않으면 과일을 만족스럽게 먹는다는 것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더욱이 우리 집처럼 식구가 많은 집은 그게 더 힘들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우리 형제들이 제철인 과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직업 덕분이었다. 아버지가 영등포의 청과물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하루는 아버지가 딸기를 궤짝으로 가져 왔다. 우리 형제들은 그걸 양껏 먹었다. 하지만 딸기가 많이 남았다. 다음날 남은 그것을 먹었지만 또 남았다. 우리는 아마도 딸기가 물렸던 것 같다. 그 이튿날 남아있던 딸기는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우린 결국 그걸 해치웠다. 어머니는 먹을 수 있는 것을 버리는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몇 년 후 어머니는 먹고 남은 딸기로 잼을 만들었다. 딸기의 계절인 오뉴월에 잼을 만드는 어머니에게 석유풍로 열기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솥에서 딸기가 졸여지며 온 집안이 달콤한 냄새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갓 만들어진 딸기잼을 큼직한 유리병에 담아 마루에 두었다. 때때로 둘째 누나가 식빵을 사오면 그 잼을 발라서 먹기도 했지만, 초등학생이던 나는 막내 누나와 함께 심심하면 딸기잼을 한 스푼씩 퍼 먹곤 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둘째 누나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다. 그 때부터 누나는 가끔 사라다(샐러드?)라는 것을 만들었다. 누나가 그것을 처음 만들어 동생인 우리에게 내놓았을 때 우리는 눈이 똥그래졌다. 누나가 손수 만든 마요네즈에 알록달록한 과일과 채소가 작은 사각형으로 버무려진 사라다는 보기에도 참 맛깔스러웠다. 그것에는 딸기도 반쪽씩 나뉘어 섞여있었다. 누나가 만들어 준 그것을 먹어보고는 이내 그 맛에 반했다. 그래서 사라다는 누나처럼 만드는 것이 정석인 줄 알았다. 그 때 이후로 다른 곳에서 사라다를 맛볼 때면 누나의 그것을 떠올리곤 했다. 다른 곳에서 맛본 대부분의 사라다는 뭔가 달랐다. 바로 딸기였다. 누나의 그것과 맛이 비슷하고 재료도 비슷한데 딸기가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딸기가 빠진 그것을 대할 때면 왠지 만든 사람의 성의가 부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라다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재료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딸기가 들어간 그것은 누나표 사라다였던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분가한 형이 집에 들를 때면 과일 등의 먹거리를 가져 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형이 가져오는 먹거리의 종류가 단단한 것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과일만 놓고 보자면 딸기가 가장 많았다. 치아가 없는 어머니를 생각한 것이리라. 어쩌다 형이 집에 올 수 없을 때 형은 전화로 내게 주문을 한다. 어머니께 딸기를 사다 드리라고.

딸기는 맛도 좋지만 크기가 작아 한입에 깔끔하게 먹을 수 있어 좋다. 다른 과일처럼 껍질을 벗길 필요도 없어 간편하다. 그리고 다른 과일과 비교해 볼 때 딸기는 영양가도 뛰어나다. 딸기에는 100g당 80mg의 비타민 C가 들어있다. 이 수치는 레몬의 2배 사과의 10배에 해당한다. 비타민 C는 감기뿐만 아니라 피로회복에 좋고 면역기능을 높이는데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딸기가 많이 갖고 있는 식이섬유 펙텐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크게 낮추는 역할도 한다. 하루에 딸기를 5~6개만 먹으면 그날 필요한 비타민C는 모두 섭취한 것이다.

딸기야 이런저런 이유로 내 너를 아꼈다. 하지만 포장을 열어보고 실망했다. 네 아래 누워있는 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작더구나. 딸기야 너는 나를 부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