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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수기 두번째 이야기) 나의 힘, 나의 용기, 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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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날짜20-12-15 15:40 조회수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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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은빛토이

제가 처음 정신과 병명을 진단 받은 나이는 97년도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군 입대를 앞두고서였습니다. 남자들에게 가장 힘든 고민거리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입대를 앞두고 열흘 넘게 불면에 시달렸고 전조증상으로 미약하게 환청이 있었습니다. 입대 전에 친구들과 바닷가로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심한 증상의 발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보호로 서울에 왔고 가족들의 동의로 폐쇄병동에 강제 입원되었고 병명은 정신분열증 현재는 순화된 병명 조현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군입대 순간만이 제게 고통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저는 제 병을 혼자 돌아보며 '왜 내가 스무살에 그렇게 까지 힘들었나'를 나름 되새김질 해보았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고통의 도화선에 불이 붙어가다가 어느 순간 커다란 고통의 순간 이겨내지 못하고 폭발 하듯 나타내어지는 것이 이른바 정신병, 마음의 병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 처음 작은 불씨의 시작은 어린시절부터 나고 자란 고향 친구들과의 이별인 것 같습니다.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 6학년 1학기를 함께한 친구들을 서울에 전학 온 순간부터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의 풍경들, 길가의 흐드러진 꽃과 나무, 졸졸 흐르는 냇가,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느꼈던 곳. 하지만 서울에 와서는 달력 안에 절기상의 계절을 보며 ‘아 봄 인가보다, 여름이구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6학년 2학기를 마치고 중학교를 진학해서 저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1~2학년 내내 학급친구들에게 폭력과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이유를 찾자면 사투리와 큰 체격 그리고 저조한 성적인 것 같습니다. 중3때 암기과목을 죽어라 해서 반에서 10등 안에 들어가니까 거짓말처럼 친구들이생기고 폭력이 멈추었습니다.

고등학교때의 고통은 진학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떨어진 성적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중학교는 백분율 성적이라서 성적이 유지되었지만 고등학교는 다르잖아요. 국영수 비율이 높고 수학공식과 비슷한 과목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게으르게 하고 깊은 우울감에 젖어 살았습니다.

고교 3년을 마치고 2년제 대학 1학기를 마친 여름 방학 때, 제게 군입대는 학교폭력의 기억과 맞물려서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결국 조현병을 진단받아 1997년 8월부터 지금까지 병원 약처방을 받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23년을 정신장애인으로 살았지만 그중에 17년은 숨어 지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퇴원 이후에도 10년은 거의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비웃음거리이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으로 나를 가두어 버린 것도 있고, 사람들의 편견이 담긴 시선을 피했습니다. 나머지 7년은 지역 정신보건센터를 다니며 직업재활의 개념으로 바리스타 기술을 익혀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터닝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다시 사회로 나오려고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절대 내가 정신장애인임을 말하지 않았고 취업하기위해 담당자에게만 말하고 일하는 동료들에겐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그대로 장애인임을 모르게 섞여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복지 전형으로 일한 곳은 장애인복지관, 스타벅스, cj 서울대 구내식당입니다. 그렇게 7년을 일하는 정신장애인으로 살다가 우연히 활동가로 살아가는 정신장애인을 만나고 무언가로 한 대 맞은 느낌 이었습니다. 저도 이때 결심을 하고 활동가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조금 더 의미를 부여 하자면 정신장애인 한명한명은 누군가에게 백신이 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의 체험자라고 여겨집니다.

내가 지우려 했던 시간을 소중한 경험과 지식으로 여기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인터뷰도 하게 되고 대학교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평생 걱정거리 큰아들이지만 난 이러한 삶을 살수 있노라고 부모님을 모시고 다닌 적도 있습니다. 눈감는 순간까지도 걱정 하실 부모님이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과 부모님이 내게 들인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보일 수 있으니까요. 발상의 전환이라면 전환입니다.

그동안은 쓸모없는 증상이었고 치료해야 할 것들 이었지만 이젠 고통의 체험자이고 경험자인 것입니다. 이걸 다르게 말하면 정신장애인 한명한명은 각자마다 소중한 고통의 경험자인 것입니다. 나에게 저주 같은 병인줄 알았고 장애물 같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정신 장애는 이제 나에게 용기이고 힘이자 지혜가 되었습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저는 살아갈 의미를 찾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당사자 활동가로서 살아가게 해준 원동력은 23년 동안 저를 믿고 기다려준 가족들, 그리고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입니다. 제 이야기를 귀 기울려 들어준 동료들과의 소중한 만남과 소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동료 당사자 분들게 한마디를 더 한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 병원에서 먹는 약보다 집에서 먹는 약이 더 낫고,

일하며 먹는 약이 더 낫고,

일하며 동료를 만나고 사회와 소통하며 약을 먹을 때 회복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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